김지윤 a

홈쇼핑 스크랩 : 쓸모없는 탑


홈쇼핑 스크랩은 2017년에 출간한 책으로, 통신판매 카탈로그의 조형과 문안을 전유한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다. 현재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물건 구매를 위한 홍보용 TV홈쇼핑 책자를 판매용 책으로 구성을 한 엽서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홈쇼핑스크랩>을 책을 넘어서서 공간에 구현하고자 한다.

낱장으로 흩어진 한장의 그림안에도 대량으로 쌓여있는 물건들이 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을 모아서 다시 탑을 쌓는다.


세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했다. 물건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해야겠어. 실효성이 사라진 물건을 판다면 어떨까. 돈을 벌자면서 쓸모없는 물건이라니. 난 상품보다는 책 만들고 싶은데. 그러다가 선택된 물건이었다, 홈쇼핑 책자는. 어릴 적에 집에 그런 게 종종 배달 왔었다. 책에는 온갖 물품들이 가득하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었던. 가장 즐거웠던 건 꼭 세트 구성이 되어 나란히 있던 모습들로, 잔뜩 쌓여있는 사물들이 빈한 내 마음을 채워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을 황홀하게 했던 것들의 기억. 나는 TV도 보지 않고, 홈쇼핑 책자는 더더욱 보지 않는다. 지금도 나오는 걸까? 하고 생각했는데 1주일에 한번 수업을 가는 병원에는 여전히 배송되고 있었다. 어느날 미술실 캐비닛에서 발견한 2013년도 cj홈쇼핑 3월호를 바탕으로, 나는 이런 저런 물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카테고리의 이름들을 살펴본다. 패션, 패션잡화, 이너웨어, 뷰티, 침구, 가구, 생활, 건강, 가전, 주방, 식품, 아동. 그 안에는 거기에 걸맞는 이미지들과 각종 소개글, 쿠폰, 할인가격등의 텍스트가 잔뜩 있었다. 특유의 이미지들과 특유의 텍스트들. 모든게 과잉인 홈쇼핑 책자를 들여다보는 일은 상당히 흥미진진했는데, 물건을 주문하기 위한 실재 용도를 떨어뜨려놓고 그 자체를 보고 있자니, 기괴하기도 하고, 인간 생활사 도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너무 직접적이라 인간의 욕망과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는것 같기도 하다. 한편, 글자가 사라진채로, 사각형의 틀안에서 이미지만이 확대되어 작업된 일러스트들은 마치 만화의 칸처럼 어떠한 상황의 전개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단순화하고, 금분으로 칠해진 각각의 그림들은, 각종 사물과 홍보용 포즈로 가득한 종교화 같기도 했다.


홈쇼핑 카달로그가 제작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발간된 모든 책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바로 폐기처분되는 홍보물의 성격상 불가능했다. 1996년~1999년 사이의 몇가지 홈쇼핑 카달로그들과 2010년 이후의 카달로그들을 바탕으로 이미지들을 먹지로 옮겨오고, 그 안의 텍스트들을 발췌하여 어울리는 이미지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업은 진행되었다.